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었던 '이바디'의 첫 앨범 'Story of Us'는 '클래지콰이'의 '호란'이 아닌 '이바디'의 '호란'을 귓가에 새기기에 충분한 앨범이었습니다. 그리고 EP 'Songs for Ophilia'는 흔하지 않은 컨셉 앨범으로 유명한 '세익스피어'의 '햄릿'을 비운의 여주인공 '오필리어'의 입장에서 재해석한 흥미로운 앨범이었습니다. 최근까지도 가장 자주 들었던 앨범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두 번째 정규앨범의 소식은 너무나 멀었습니다. 디지털 싱글이나 컴필레이션 참여는 종종 들렸지만 말이죠. 그렇게 첫 정규앨범 이후 무려 3년 6개월만에 두 번째 정규앨범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앨범 제목은 'Voyage'로 앨범 제목으로는 매우 자주 쓰이는 제목입니다. 특히 뉴에이지나 째즈 등 연주음악 계열이나 팝페라 같은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음악들의 앨범 제목으로 자주 쓰이는데 영어나 프랑스어로 모두 '여행'을 뜻하는 제목처럼, 저에게는 여유로운 여행이나 외유같은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네요.

앨범 제목과 같은 첫 곡 'Voyage'의 잔잔함은 1집을 이어가면서도 1집에서 느낄 수 없었던 여유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밌게도 가사는 첫 곡이 아닌 마지막 곡인 것 마냥 느슨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이바디 음악활동의 정리(슬프게도 해체가 될 수도 있는) 혹은 변화를 이야기 하고자 하는 듯합니다.

'아빠를 닮은 소녀'는 본인의 이야기일 법하지만 타인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담은 곡입니다. 2집에서 가장 크게 느껴지는 따스함이 진하게 담겨있는 곡으로, 제목의 소녀는 바로 화자의 '할머니'입니다. '아빠를 닮았은'는 역설적인 표현은 '엄마소도 얼룩소 엄마(를) 닮았네'가 아닌 '엄마소도 얼룩소 엄마가 닮았네'라고 가사를 바꾸어 불렀던 제 어린 시절의 장난이 생각나는 정겨운 제목이기도 합니다. 할머니 이야기이기에 눈물을 뺄 심산일 수도 있겠지만 이 곡은 역시 잔잔하면서도 여유롭게 '노인'이 아닌 '그녀'로서 '흰 머리 소녀'를 그려냅니다. EP에서도 느껴졌던 이런 시선은 '이바디'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독창성이 아닐까 합니다. '세월의 기다림을 듣고 있는'이라는 대목에서는 할머니에게 가까워진 '죽음의 그림자'가 느껴지기도 하기에 조금은 서글퍼 지네요.

이바디 음악의 매력은 가슴을 후벼파는 가사와 깊은 울림인데 'Eve'가 바로, 저에게는 그런 서정미를 담고 있는 킬링 트랙이라고 하겠습니다. 억지로 눈물을 짜내는 호소가 아닌, 미묘한 감정의 전달에서 느껴지는 슬픔이 더욱 크다는 점을 다시 느끼게 합니다. '나비처럼'은 역시 여유로움을 담아내는 곡이고 '루나캣'은 평소 호란의 성격처럼 호쾌한 그녀를 만날 수 있는 독특한 곡입니다.

제목처럼 앨범 수록곡의 구성은 한 테마 혹은 응집력보다는 이바디가 1집과 EP 이후 활동해온 행적들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살짝 보여주는 앨범처럼 들립니다. 북OST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에 수록되었던 'morning call'이나 컴필레이션 수록곡 '두근두근', 디지털 싱글 수록곡 '산책', 마지막으로 EP에 수록되었던 '탄야'와 'Curtain call'까지, 앨범 수록곡 10곡 가운데 절반인 5곡이 이전 발표곡들의 다른 버전이기에 아쉽습니다.

한 곡 한 곡 이바디의 매력이 듬뿍 담겨있는 앨범 'Voyage'이지만 정규앨범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쉬운 '소품집' 정도가 될 법한 앨범이 아닐까 합니다. 디지털 싱글로만 들을 수 있었던 곡들도 소장할 수 있기에 참으로 반갑지만 오랜 기다림을 채우기에는 조금은 아쉬운 절반 같은 두 번째 정규앨범이라고 하겠네요. 별점은 4개입니다.
2011/11/16 18:36 2011/11/16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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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준비 끝에 모습을 드러낸 파스텔뮤직의 야심작, 'Lucia with Epitone Project'의 '자기만의 방'.

2010년 10월과 11월 디지털 싱글 '첫 번째, 방'과 '두 번째, 방'으로 앨범을 예고했었던 '심규선'이 해가 바뀐 2011년 9월 드디어 정규앨범으로 찾아왔습니다. 약 11개월의 시간이 흘러 앨범을 발표하는 그녀의 이름은 'Lucia(그녀의 세례명)'로 바뀌었고, 'Lucia with Epitone Project'로서 프로듀서 '에피톤 프로젝트'와 함께한 '자기만의 방'이 그 결과물입니다. 이번 앨범 발표에 앞서 올해 5월에 공개된 디지털 싱글 '꽃처럼 한 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까지 세 싱글이 각기 다른 분위기를 들려주면서 앨범에서는 어떤 곡들을 들을 수 있을지 궁금하고 기대되었는데 꽤 오랜 기다림이 되었군요.

고독으로 가듣찬 입김같은 허밍을 들려주는 '첫 번째, 방'으로 앨범은 시작합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꼭 '한희정'의 허밍과 비슷하게 들리더군요.) 첫 곡은 싱글로 공개되었던 '꽃처럼 한 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입니다. 가요에는 주로 짧은(단편적이면서도 간결한) 제목을 선호하는 우리나라 정서에는 이 곡의 제목이 상당히 장황하고 마치 외국어를 번역해 놓은 제목처럼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디지털 싱글로 공개된 제목을 처음보았을 때 일본의 '나카미시 미카'의 '연분홍빛 춤출 무렵' 같은 곡이 생각나더군요. '꽃처럼 한 철'이라는 비유가 참으로 멋들어진데, 째즈풍으로 편곡된 연주는 윈드차임의 신비함과 어우러져 어련한 봄날의 싱숭생숭함과 기다림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앨범을 관통하는 '기다리는 사랑', 혹은 '사랑의 기다림'을 알린다고 할까요. 무려 Lucia의 자작곡으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부디'는 디지털 싱글 '두 번째, 방'로 공개되었던 곡으로 정규앨범에서는 Album version으로 재녹음되었습니다. 재녹음되면서 과도한 애드립이 줄어들면서 보컬이 싱글에서보다 부드럽게 곡에 융화되었습니다. 에피톤 프로젝트, '차세정'의 장기인 현악을 적절히 이용한 감성 발라드는 여전합니다. 하지만 보컬이 악기들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본인의 앨범과는 다르게 이 앨범에서는 Lucia의 목소리가 곡의 중심에서 들리는 차이가 있습니다. 앨범 타이틀 곡으로도 손색이 없어서, 앨범 공개에 앞서 선공개되었던 '안녕, 안녕'이나 타이틀로 내세운 '어떤 날도, 어떤 말도'와 함께' 트리플 타이틀 전략이 아닐까 하네요. 이어지는 '고양이 왈츠'는 디지털 싱글 '첫 번째, 방'으로 공개되었던 곡입니다. (첫 세 곡이 연속으로 싱글곡들이네요.) 가벼운 왈츠의 세박자와 함께 봄날의 설렘을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네요.

앨범 공개 일주일 전에 선공개되었던 '안녕, 안녕'입니다. 안타까움을 노래하는 가사이지만 연주는 상당히 밝고 경쾌합니다. 시작부터 경쾌한 피아노 연주는 달리기를 하는 느낌이 들게 하는데,  빠르게 스쳐지나며 '안녕'하는 '스무살의 어딘 가'을 표현하고 있나봅니다. 연주과 가사의 다른 분위기만큼 '웃음지은 눈물' 그려내기에 적절한 기교가 또 있을까요.

'Sue'는 Lucia의 자작곡으로 이 앨범에서 뇌리에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기는 곡이기도 합니다. 제목 다음에는 'inspired by Fingersmith'라고 적혀있는데 'Fingersmith'는 2002년에 발표된 'Sarah Waters'의 소설이자 이 소설을 바탕으로 2005년에 영국 'BBC'에서 제작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소설이나 영화는 동성애를 다루었지만, Lucia는 '보편적인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너를 이해할 수 없지만, 너 없이 살 수 없다'고 외치는 후렴구는, 바로 서로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음에도 빠지게 되는 '사랑의 본질'에 대한 호소가 아닐까 하네요.

첫 트랙 '첫 번째, 방'이 1분이 되지 않는 트랙이었지만, 앨범의 후반을 여는 '두 번째, 방'은 2분이 넘는 연주곡입니다. 아기자기하고 서정적인 선율은 이어지는 '어떤 날도, 어떤 말도'의 인트로인 동시에 에피톤 프로젝트가 참여했다는 발자국 같은 트랙이 아닐까 합니다. 두 트랙은 디지털 싱글의 제목이기도 한데, 디지털 싱글 수록곡들과는 관련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싱글 '두 번째, 방'에 수록되었던 '부디'는 앨범의 전반부인 '첫 번째, 방'에 가있으니까요.

'어떤 날도, 어떤 말도'는 이 앨범의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전체적으로 무난한 전개로 앞선 '부디'나 '안녕, 안녕'보다 부족한 임팩트는 아쉽습니다. 다만 간주에 등장하는, 트럼펫과 비슷한 느낌이면서도 가을의 공기만큼 아련한 그리움을 담고 있는 '플루겔혼' 연주는 인상적입니다.  째즈풍의 '버라이어티'는 Lucia의 뮤지컬 배우로서의 경력이 물씬 느껴지는 곡입니다. 다분히 뮤지컬 삽입곡 같은 전개와 브라스와 현악을 배치하여 반짝이는 화려함을 들려주는데, '임상아'의 '뮤지컬'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고양이 왈츠 Acoustic'은 제목 그대로 고양이 왈츠의 어쿠스틱 버전입니다. 오리지널 버전에서는 사랑에 대한 설렘이 느껴진다면 어쿠스틱에서는 설렘보다 망설임과 두려움이 더 크게 들리네요. '어른이 되는 레시피'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곡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이기에 Lucia의 자작곡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예상을 뒤엎고 차세정의 곡입니다. 앞선 '고양이 왈츠'에 이어 어쿠스틱 분위기를 이어갑니다. 하지만 고양이 왈츠가 제목처럼 왈츠의 세박자로 느긋하게 흘러간다면 오밀조밀한 연주로 속도와 긴장감을 조성하여 귀를 사로잡습니다.

'웃음'은 이 앨범에서 Lucia의 뒤에 숨어있었던(?) 차세정이 모습을 드러내는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Lucia와 차세정의 듀엣곡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에피톤 프로젝트의 분위기가 나는 곡이기도 하면서 다른 점들도 들립니다. 역시 현악의 연주는 '에피톤 프로젝트답다'고 할 수 있지만, 그의 앨범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비극적인 씁쓸함'이 담겨있습니다. 그렇기에 '웃음'은 해맑은 미소가 아닌 허탈한 쓴웃음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앨범의 문을 닫는 앨범 제목과 동일한 '자기만의 방'은 Lucia가 제일 자신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곡이 아닐까 합니다. '버라이어티'와 마찬가지로 째즈와 뮤지컬이 어우러진 분위기는 그녀가 지향하는 음악적 목표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기에 '자기만의 방'이라는 제목이 붙었겠죠.

보컬리스트와 프로듀서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Lucia with Epitone Project'의 앨범은 요조(with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와 타루(with Sentimental Scenery, Swinging Popsicle)에 이은 파스텔뮤직의 세 번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인디씬에서는 보기 어려운 이런 조합의 시도는 이제 완성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기본인 가창력과 더불어 (홍대에서 듣기 쉽지 않은) 또박또박 아나운서같은 명료한 발음이 돋보이는 보컬리스트 Lucia와 보컬리스트들과의 협업에서 재능을 보인 물이오른 프로듀서 에피톤 프로젝트의 조합은 지난 조합들보다도 탁월한 출발을 들려줍니다. Lucia와 에피톤 프로젝트, 두 사람이 어디까지 비상할 수 있을지 지켜보도록 하죠. 별점은 4개입니다.
2011/10/06 21:14 2011/10/06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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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강변북로 가요제'를 시작으로 2년마다 홀수년에 열리는 MBC 인기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가요제는 올해로서 3회째를 맞았습니다. 2007년과 2009년에는 각각 '강변북로 가요제'와 '올림픽대로 듀엣 가요제'로 서울을 상징하는 한강의 북단과 남단을 따라 달리는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로 서울을 포함안 수도권을 무대로 했다면, 올해는 전국으로 무대를 넓혀서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긴 고속도로인 '서해안고속도로'(342km)에서 열렸습니다. (참고로 가장 긴 고속도로는 '경부고속도로'로 426km입니다. 2013년에도 열린다면 '여름의 휴가'라는 상징에 맞게 234km의 영동고속도로에서 열리지 않을까 하네요.) 2009년의 듀엣 가요제와 비슷하게 기존의 가수들을 섭외하여 팀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음원이 공개되면서 모든 곡들이 음원차트의 상위권을 장식하는 '무한도전의 위력'을 보여주었습니다.

2009년에는 어떤 곡들보다도 '박명수'와 '소녀시대'의 '제시카'가 함께한 '냉면'이 거의 압도적인 인기를 보여주었다면 이번 서해안고속도로 가요제에서는 모든 곡들이 사랑을 받았는데, 개인적으로 눈에 띄었고 최근에 많이 듣는 곡은 바로 '정재형'과 '정형돈'이 함께한 '파리돼지앵'의 '순정마초'입니다. 누구라도 의미를 알아챌 수 있는,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 중인 정재형의 별명 파리지앵과 정형돈의 별명 돼지를 결합한, 팀이름은 조금 우습지만 이 팀이 들려주는 노래은 어떤 팀들보다도 진지합니다. 대한민국 간판 예능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무한도전'의 이벤트답게 적당히 가볍고 신나는 가요제를 만드는 것이 격년으로 열리는 가요제의 목표가 아닐까 하는데, '파리돼지앵'이 들려주는 '순정마초'는 도입부부터 상당히 진지합니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시작하는 웅장한 연주는 가요제에 참가한 다른 곡들과는 다른 스케일이고 청자를 압도할 만한 위력입니다. 처음 '순정마초'의 연주를 들었을 때, '역시 클래식을 전공하는 정재형다운 스케일이구나'라는 생각과 '가요계에서 정재형이 아니면 할 수 없을 스케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애절한 탱고의 선율을 연주하는 '반도네온'이라는 생소한 악기까지 동원하여 오페라의 한 소절을 보는 듯한 웅장함을 들려주는 '순정마초'의 연주는 '웃자고 한 이야기에 죽자고 달려드는 격'이라고 할 만하겠습니다.

하지만 가사를 들어보면 달라집니다. '순정마초'라는 '순정'과 '마초'가 합펴진 제목 자체부터 어쩐지 우스운데 '달밤의 미스터 리옴므파탈'이라던지 '사랑의 파괴자'라는 단어는 그럴싸하게 진지하면서도 우습습니다. 그리고 '레베카'를 '내 백합'이라고 하는 부분에서 그 절정을 달립니다. 병맛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순정마초가 들려주는 웅장함 때문에 '병신같지만 어쩐지 멋있어'라는 기분입니다.

최근 예능에 확고하게 자리잡은 '윤종신'에 이어 가수출신의 '예능늦둥이'의 기질이 보이는 정재형은 '베이시스' 시절부터 좋아하는 곡들이 많았고 솔로 앨범을 통해 저는 확실하게' 꼭 앨범을 사야하는 뮤지션'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2008년 (가수로서) 세 번째 정규앨범 '에 이어 2009년의 소품집 '정재형의 Promenade, 느리게 걷다'를 발표하였고 2010년에는 첫 피아노 연주 앨범 Le Petit Piano'를 발표하였습니다. 2011년이 다 가기전에 새로운 정규앨범을 기대해도 될까요?
2011/09/18 23:07 2011/09/18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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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그의 향기? 트램폴린의 두 번째 정규앨범 'This is why we are falling for each other'.

2008년에 발매되었고 뒤늦게 접했던 '트램폴린(Trampauline)' 첫 정규앨범 'Trampauline'은 탁월한 멜로디였지만, 들려주는 소리에서는 오르골이 들려주는 자장가만큼이나 심심함이 컸던 신스팝 앨범이었습니다. '트램폴린'은 싱어송라이터 '차효선'의 솔로 프로젝트로 시작하였지만 첫 앨범의 그런 심심함을 알아차렸는지, 현재는 앨범 작업 및 공연을 도와주는 기타리스트 '김나은'은 영입하여 '여성 듀오'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김나은은 'I love J.H'의 기타리스트로 앨범을 발표한 경력이 있습니다.) 새로운 멤버의 영입이라는 심기일전에서 드러나듯 간이 덜된 음식처럼 심심했던 소리들은 가볍게 몸을 흔들어도 좋을 만큼 생기를 찾아 돌아왔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앨범 'This is why are falling for each other'입니다. 이제부터 이 앨범의 살펴봅니다.

아침해가 떠오르게 나른함 속에서 기지개를 펴듯 앨범을 시작하는 'Little Animal'은 경쾌함을 담고 있습니다. (가사가 어쨌건) 제목이 의미하는 '작은 짐승'에서 연상되는 아기 사자의 경쾌한 사바나 탐험기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신디사이저의 소리는 밤하늘을 가득히 수 놓은 별들처럼 빛나고, 일렉트릭 기타 연주는 거친 노을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낮게 깔리는 차효선의 나레이션은 디즈이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서 밤하늘에 주인공 '심바'가 만나는 아버지 '무파사'의 목소리 만큼이나 무게감을 담고 있습니다. (곡 제목과 마지막 나레이션 때문에 '라이온 킹'이 생각나고 말았습니다.)

앨범의 타이틀 곡인 'Anthropology'는 독특하게도 '인류학'을 의미하는 제목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인류에게 축복이라면 제목처럼 '사랑에 빠지는 이유'를 이야기하는 것이 진정한 Anthropology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드는데, 가사를 떠나서 무대위에서 차효선이 보여주는 제자리 걸음과 어깨춤을 따라해도 좋을 만큼 가벼운 춤이 어울립니다. 사실 트램폴린의 노래에서 가사는 '의미 전달'의 목적보다는 '운율을 만들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는 생각입니다.

'Bike'는 제목만 봐서는 경쾌한 질수가 느껴질 법합니다. 하지만 연주는 왠지 끈적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가사를 살펴보면 트램폴린의 노래는 전곡이 영어이기에 이 곡도 왠지 분위기있게 들리지만, 사실 이 곡은 손발이 오글오글한 유혹의 노래입니다. 사실 많은 유명 팝송들이 단순 혹은 유치하거나 별 의미없는 가사를 갖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언어에서 오는 문화적 차이 정도가 되겠습니다. (사실 가요의 수 많은 사랑 노래들도 마찬가지이죠.) 장황한 제목의 'Love Me Like Nothing's Happened Before'는 맑게 개인 아침의 조깅만큼 생쾌하게 시작합니다. 앞선 'Bike'가 손발이 오글오글했다면, 이어지는 장황한 제목의 역시 너무 뻔한 수작을 노래합니다. 하지만 단어의 반복은 뻔함 속에서도 사랑에 대한 절실함이 담긴 주문처럼 들립니다.

'A Rose with Thorns'는 지금까지의 트랙들과는 다르게, 서정적인 선율이 특징입니다. 신비로운 윈드차임의 소리나 멜로디를 따라 흐르는 신디사이저의 연주와 서정성을 더하는 기타 연주는 아름다움을 완성하고, 'Enya'의 노래에서나 들었을 법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가사에서 지난 사랑이 남긴 상처를 '가시 돋힌 장미'에 비유한 점은 참 신선합니다. 그리고 'Rose with Thorns'가 들어간 후렴구를 발음하는 자체가 어떤 운율을 만들어내어 묘한 중독성을 유발하네요. 약자의 의미가 궁금한 'D. B. R'은 신디사이저와 일렉트릭 기타가 한 마디씩 주고 받는 연주가 인상적입니다. 눈물을 뽑아낼 신파극같은 이야기가 담겨있을 법한 가사이지만 담담하면서도 댄서블한 점은 '트램폴린' 음악의 특징이 아닐까 합니다.

'History of Love'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신디사이저의 연주가 인상적인 트랙입니다. 서정적이고 ('블레이드 러너'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와 같은 과거 SF 영화 속에서 비추는 미래들을 보는 일처럼) 미래적이면서 동시에 복고적인 느낌의 신디사이저 연주는 '신디사이저 음악'을 이야기하는데에 빼놓을 수 없는 거장 'Vangelis'의 미래적이고 서사적인 연주들과도 닮은 점이 느껴집니다. 가사는 전혀 그런 내용이 아니지만, 어쩐지 꽃봉우리가 활짝 피어나는 장면을 고속재생으로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합니다.

'You are My Sunshine'는 신디팝이라기 보다는 IDM에 가까운 트랙입니다. 잔잔한 노래가 흐른 뒤 따르는 신디사이저 연주는 이 앨범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신디사이저만이 표현할 수 있는 우주적인 쓸쓸함은 감정을 압도합니다. 드넓은,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에서 홀로 유영하는 우주비행사의 적막함과 말로 표현할수 없는 먹먹한 기분이 바로 이런 음악이 아닐까요? ('X3'와 같은 우주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 속에서 비행을 하다가, 문득 행성도 다른 우주선도 보이지 않는 그저 머나먼 별들만이 반짝이는 검은 바다를 바라보며 느끼는 먹먹함이 바로 이렇습니다.) 우주비행사와 지구에 남겨진 그의 애인 사이의, 이제 서로 닿을 수 없는 마음과도 같이 쓸쓸하기만 합니다.

마지막 곡은 'Be My Mom's Lover'로 어떤 곡보다도 공연을 통해 익숙한 곡입니다.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진 가사는 적당히 댄서블한 리듬을 통해, 슬픔이나 기쁨과는 다른 종류의 감정 혹은 어떤 깨닳음에 닿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그 결론은 엄마의 애인이 되어 그리고 가족이 되어 변치 않는 사랑을 하자는 의외의 결론에 도달합니다. 어찌 생각하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처럼 애절하고 또 어찌 생각하면 우스꽝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차효선은 담담하게 노래합니다. 이 앨범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그랬던 어조로요.

인디씬에서 흔하지 않은 신스팝 밴드로, 신디사이저라는 미래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소리를 들려주는 악기를 전면에 내세운 트램폴린이지만, 이 여성 듀오가 들려주는 오히려 복고적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20세기 음악들, 80년 대와 90년 대 뿐만 아니라 그전 시대를 빛낸던 장르들(팝, 뉴웨이브, 블루스 등)의 향기를 머금은 신스팝의 작은 잔치가 바로 트램폴린이 지향하는 음악이 아닐까 하네요. 제가 좋아했던 여러 아티스트들의 조각들이 트램폴린의 음악에서 들리고 느껴지네요. 그윽히 깊어가는 가을밤, 서늘한 가을 바람처럼 담담하지만 그리움을 머금은 트램폴린의 앨범과 함께하면 어떨까요? 별점은 4개입니다.

2011/09/12 01:36 2011/09/12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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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으로 가는 Signal Song, '라이너스의 담요' 10년만의 첫 정규앨범 'Show Me Love'.

무렵 10년 만의 첫 정규앨범, 아니 그보다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바로 '라이너스의 담요(Linus' blanker)'의 정규앨범이 드디어 발매된 것입니다. (혹자는 지구 멸망이 가까워졌기에 그 징후가 나타났다고 평하기도 합니다.) 밴드 '라이너의 담요'는 2001년에  결성되어 2003년 첫 EP 'Semester'에서 들러운 상큼함으로 기대로 모았고 2005년 두 번째 EP 'Labor in Vain'로 그 기대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정규앨범은 깜깜 무소식이었고 2007~2008년 경에는 정규앨범 소식이 들렸지만 그냥 풍문이었는지 그렇게 잊혀졌습니다. 그러다가 2011년, 드디어 기습적인 발매를 맞이하게 되네요. (2012년이 다시 지구 멸망의 해로 떠오르는데, 역시 지구 멸망의 징조일까요?)

앨범을 들어보면 전반부에는 흥겨운 째즈의 느낌이 강한데, 그런 점을 반영하듯 앨범을 여는 첫 곡의 제목은 'Rag time'입니다. Rag tme의 의미를 찾아보면 '째즈의 한 피아노 연주 스타일'이고 '술집이나 무도회장에서 연주되는 스타일'이라고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시작부터 펍(Pub)이나 바(Bar)의 흥겨운 파티의 느낌이 물씬 느껴집니다.

이어지는 앨범 타이틀 'Show Me Love'는 귀여운 팝을 기대하게 했던 '라이너스의 담요'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흥겨우면서도 성숙한 느낌입니다. 흥을 돋구는데 좋은 방법인 브라스까지 등장하면서 펍의 흥겨운 파티나 50~60년 대를 배경으로한 뮤지컬의 한 장면 정도를 연상시키기에도 충분합니다.

'Gargle'은 최근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한 '검정치마'와 함께한 곡으로 복고적이고 흥겨운 분위기를 이어갑니다. 다만 조휴일의 목소리는 귀여운 연진의 목소리와 대비되어 마치 할아버지와 손녀가 부르는 곡처럼 들리기도 하네요. 'Misty'는 고급스러운 째즈바에서 들을 법한 곡으로, 고혹적인 연진의 보컬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보컬리스트로서 욕심까지 느껴진달까요? 앨범 전반부의 복고적인 분위기는 EP 'Semester'의 귀여운 이미지가 강했던 이 밴드에게는 상당한 변화라고 할 수 있는데, 보컬리스트로서 의욕적인 활동을 보여주었던 '연진'을 궤적을 추척해본다면 놀랄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앨범에도 수록된) 두 번째 EP의 타이틀 'Labor in Vain'에서는 나긋나긋한 변신이 있었고, 2006년에 발표된 두 장의 앨범에서도 그런 변화를 예상할 수도 있었습니다. 영국의 밴드 'BMX bandits'와 함께한 'Save Our Smiles'는 원테이크로 녹음한 느낌으로 펍에서의 공연 느낌이었고, 역시 영국에서 '버트 바카락'과 함께한 'Me & My Burt'에서도 보컬리스트로서 연진의 욕심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첫 EP의 귀여웠던 'Picnic'도 앨범의 파티 분위기에 맞게 재탄생했습니다. 귀여움은 아직 남아있지만, 에그 쉐이크나 펍의 한가운데서 펼쳐지는 공연 같은 현장감을 주는 추임새와 배경음 덕분에 흥겨움이 더합니다. 두 번째 EP의 수록곡이기도 한 'Labor in Vain'은 보사노바풍의 곡으로 'Misty'에 이어 보컬리스트 연진의 매력을 발산하는 곡입니다. 'Misty'에서는 우수에 찬 남성(지난 사랑이었던)을 아련하게 바라보는 아가씨였다면, 이 곡에서는 '사랑은 헛수고'라고 외치는 도도한 도시 아가씨를 떠올리기에 충분하죠.

앨범의 전반부가 늦은 밤 펍이나 바에서 펼쳐지는 공연과 같은 분위기였다면 후반부에는 본격적으로 밤을 향하는 음악, (보통 리스너들이 생각하는 혹은 생각할 만한) 더 인디밴드다운 음악을 들려줍니다. 그런데 이 앨범 전반을 감싸고 있는 복고적이면서 아날로그적인 소리들은 2006년 발표되었던 '에레나'의 앨범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그런 동질감에는 이유가 있었으니 이 앨범에 믹싱 엔지니어 및 사운드 수퍼바이저로 참여한 'DJ soulscape'의 존재입니다. 바로 에레나의 앨범에서는 그의 또 다른 음악적 자아인 'Espionne'로서 프로듀서 및 믹싱 엔지니어로 참여했기 때문이죠. (여러모로 유사점이 많은 두 앨범입니다. 여성보컬이라는 점, 두 앨범다 8월에 발매되었다는 점부터 음악적 스타일과 사운드가 들려주는 따뜻한 아날로그적인 감성까지도 그렇습니다. 더구나 에레나의 앨범에 'Holidaymaker'라는 곡이 있는데 이 앨범에 참여한 조휴일의 영어식이름이 바로 'Holiday'이기도 합니다.)  복고적이고 아날로그적인 감성은 앨범 CD 및 디지팩의 디자인에서도 나타나는데 CD는 LP의 모습으로 프린팅이 되어있고 디지팩은 기타와 트럼펫, 피아노 그리고 마이크를 단순화해서 담고 있습니다.

후반부를 시작하는 '순간의 진실'은 잔잔한 곡이지만 재밌게도 레게 곡입니다. 흥겨울 줄만 알았던 레게가 이렇게 잔잔할 수도 있네요. 잔잔함 속에서도 코러스는 상당히 유쾌하여 재미가 쏠쏠합니다. '고백'은 고즈넉한 밤길을 걸으며 풀어내는 절절한 고백의 가사가 인상적입니다.

'Music take us to the universe'는 이전까지 '라이너스의 담요'의 곡들과는 전혀 다른 깜짝 놀랄 만한 일렉트로니카 트랙입니다.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려 욕심일까요? 제목부터 재밌는 '밀고 당기기'가 느껴지는 'Stop liking, start loving'은 서서히 마지막 곡을 향해는 앨범처럼, 잠을 청하는 오르골 연주 만큼이나 감미롭습니다. 마지막은 두 번째 EP에 수록되었던 'Walk'로 밝고 씩씩한 마무리를 들려줍니다.

앨범 'Show Me Love'는 적지 않은 11 트랙을 담고 있지만, 너무 오랜 기다림 속에 발매된 앨범이기에 너무나 짧게 느껴집니다. 다행히도 한 곡 한 곡, 맛깔나는 곡들로만 채워져있기에 기다림은 어느 정도 보상이 될 법합니다. 인디 뮤지션들도 오래 기다린 앨범인가 봅니다. 크레딧을 보면, '로로스'의 도재명이나 '페퍼톤스'의 이장원처럼 익숙한 이름들이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꾸준한 공연과 너무 늦지 않은 후속 앨범의 발표만이 오랜 기다림을 채워줄 특효약이 아닐까 합니다. 별점은 4개입니다
2011/08/31 16:46 2011/08/31 16:46
Posted by bluo